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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은 인권유린자,살인자들을 고발한다(3)
살인장비와 방법이 총동원된 동족살륙만행
본사기자 오철훈
광주인민봉기가 한창이던 당시 일본의 한 TV방송은 광주에서의 대학살만행과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도하면서 심장이 약한 사람은 TV앞에서 물러나라고까지 경고하였다. 그만큼 광주봉기자들과 시민들에 대한 살인악당들의 탄압과 학살행위는 전쟁시기에도 볼수 없는 끔찍하고 악착스러운것이였다.
군사깡패들은 광주인민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전쟁시기에 사용할수 있는 살인무기와 방법들을 총동원하였다.
군사불한당들은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여 광주시를 2중3중으로 포위하고 외부로부터 쌀과 식료품, 먹는물과 전기공급을 완전히 차단하여 80만의 광주시민을 질식시키려고 하였다.
악랄한 《봉쇄작전》으로도 광주시민들의 봉기를 진압할수 없게 된 전두환살인악당은 봉기 열흘째되던 5월 27일 새벽에 1만 7천여명의 괴뢰《계엄군》과 락하산부대들을 투입하여 하늘과 땅으로부터 광주시에 대한 전면적인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105mm곡사포 심지어는 미싸일까지 시외에다 배치하여 포문을 시내중심부에 겨냥해놓은 다음 전투용 헬리콥터(윁남전쟁에서 악명을 날린 대형헬리콥터로서 16개의 로케트발사대,4문의 기관포가 장치되여있음)로 무차별공중사격을 퍼부은 후 《M-60》, 《M-40》의 중전차대를 선두로 전투보병이 시내로 진입하였다. 말그대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였다.
중전차대는 먼저 학생들과 시민들의 거점으로 알려진 《도청》청사와 중요건물을 포격하였다. 이렇게 하여 봉기군중의 저항력을 제압하고 전투보병으로 전진을 하였고 공정대는 헬리콥터로부터 쏟아져나와 다시 집단학살을 감행하였다.
살인귀들은 광주봉기자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든 살인방법을 다 적용하였다. 생사람을 땅속에 매장하여 죽이고 전차로 깔아죽이고 독가스로 질식시켜 죽이고 대검으로 배를 관통시켜 죽이였다. 또한 머리를 박살내여 뇌수가 튀여나오게 하여 죽이고 목을 매달아죽이고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죽이고 옥상에서 내려뜨려죽이고 수술환자를 끌어내여 밟아죽였다.
저주로운 살인마들은 충장로에 있는 3층건물의 옥상에서 3명의 부상자들을 내던져 즉사케 하였는가 하면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은 중상자 4명을 불붙는 파출소의 불길속에 내던져 불타죽게 하였다.
악질특전대들은 가스로 사람들을 질식시켜 죽이였다. 놈들은 30여명의 시민들을 밀페된 숨막히는 창고안에 몰아넣고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가하다가 나중에는 가스로 질식시켜 살해하였다. 또한 수십명의 광산로동자들과 주변농민들을 새끼줄로 목을 매여 나란히 눕혀놓고 10여㎏짜리 돌로 머리를 내리쳐 죽이다 못해 그우로 장갑차를 내몰아 무참히 살해하였다.
살인마들은 봉기자들에게 먹는물과 빵을 무상으로 공급해주고 돌을 날라다준 구멍가게주인과 그 막내아들에게 《폭도를 도와준 너희도 폭도다.》라고 하면서 그들을 군용트럭의 뒤에 매달아 끌고가며 죽여버렸으며 병원수술실에 뛰여들어 《폭동주동분자》라고 하면서 수술중에 있는 중환자까지 끌어내여 징박은 구두발로 밟아죽이고 화염방사기로 태워죽이였다. 살인악당들은 시내를 벗어나 먹을것을 구하고 피를 얻으러 시변두리로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도 례외없이 사살했고 가택수색을 하다가 문을 제때에 열어주지 않는다고 하여 집에 수류탄을 던져 일가족 5명을 살해했으며 남금동에서는 남편의 행처를 대지 않는다고 하여 2살짜리 아이를 어머니앞에서 대검으로 복부를 찔러죽였다.
특히 파쑈악당들은 어린이, 연약한 녀성과 임신부도,고령의 로인들과 병약자들도 가림없이 무참히 학살하였다.
광주는 피로 강물을 이루고 시체로 산을 쌓은 수난의 도시로 되였다. 5월 23일 하루동안에 광주시의 《도청》지하실 한곳에만도 얼굴을 알수 없도록 화염방사기에 그슬리고 찢긴 475구의 시체가 쌓여져있었으니 넓은 광주시내의 광장과 거리, 골목, 공원과 강가, 산기슭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널려져있었겠는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파쑈악당들은 저들의 살인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희생자들을 불태워버리거나 수류탄이나 화약으로 폭파시키고 강물에 처넣는 등 2중3중의 죄악을 저질렀다. 거리와 공원을 비롯하여 골목마다 널려져있는 시체들은 무시로 불길속에 던져져 재가루로 날아 없어졌다. 담담탄을 사용한 증거를 없애기 위하여 병원에 실려간 총상자들을 강제로 끌어내여 화염방사기로 불태워죽이는 귀축같은 만행도 감행하였다.
공수특전대는 어둠을 리용하여 금남로와 중앙로일대에서만도 160여구의 시체를 10여대의 대형군용트럭에 실어 무등산골짜기에 파묻어버렸으며 비밀리에 학살한 130여명의 학생, 시민들의 시체를 광주천하류에 내던졌다.
실로 남조선군사깡패들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살인악당들이며 동족살륙만행과 인권유린행위를 식은죽먹기로 감행한 악한중의 악한들이다.
북한군 600명 광주침투를 믿는자가 종북이다
광주 민중들의 항쟁을 폄하하려는 자가 진정한 ‘종북주의자‘
임두만
북한군 600명이 침투, 광주까지 잠입했어도 알지못한 한국군, 비상계엄 상황에 전군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상황에… 북한은 특수전 부대 600명을 남한에 잠입시켰다.
대단한 북한군 능력이다. 그래서 이 화두는 오늘도 뜨겁다. 특히 오늘은 KBS 9시 뉴스에 다뤄지기도 했다.
▲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갈무리.
▲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갈무리.
그렇다면 당시 전두환 군부가 장악했던 우리 군은 국경 경계에 실패한 것이다. 전군 비상경계령 하인데도 국경이 적군에 뚫리도록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참 허술하고 멍청한 대한민국 군대다. 이런 군대를 믿고 당시 우리 국민들은 발 뻗고 잠을 잤다. 간도 크다.
'전투에 패하는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군대 용어가 있다.
이 때문에 군인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계에 실패하면 그 실패의 경중에 따라 지휘계통에 따라 상당수 지휘관들까지 징계를 받는다. 무장탈영, 공비 또는 간첩침투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가끔씩 철책을 뚫고 월북하는 사례도 있으나 이는 극소수다.
어떻든 철책선이든 해안선이든 경계 소홀로 경계선이 뚫렸다면 최소는 동 시간대 근무자에겐 군사재판 회부, 영창, 군기교육, 경고 등 순으로 징계가 내려지고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등으로 올라가면서 사고 경중에 따라 구속, 전역, 보직해임 등의 징계절차가 진행된다. 공비 1~3명의 소수라도, 심지어 아군 무장탈영병 1명이라도 이 수순에 예외는 없다. 그런데 무려 600명이다. 그 탈북자 말대로라면 그도 특수전 부대 1개 대대란다. 이들이 어떻게 침투했을까?
1. 철책선을 뚫고?2. 잠수정을 타고?3. 어선으로 위장해서?4. 아예 함정을 몰고?5. 상륙작전을 통해?
군 생활 10여년, 그도 해병대라는 특수부대, 일반병도 아닌 간부로 복무했으나 내 군대 경험으론 이해할 수 없다.
1개 대대급 병력이 이동하는데 육상 이동은 병력 수송용 25인승 4톤 트럭 20대, 지휘부 이동용 짚차 최소 3대, 병참지원용 차량 최소 2대, 엠블런스 1대를 최소장비로 보면 된다. 도보 이동일 경우 도로 양측면 2열 횡대로 300~400m 정도다. 이는 개인 간격 1m일 경우이고 통상 1,5m이므로 거의 500m까지 늘어지기도 한다.
해상 이동은 더 방대하다. 일단 침투가 목적이므로 소형보트였거나, 아니면 잠수정을 이용하여 우리 해역에 침투한 뒤 상륙해야 하는데, 소형보트라면 최소 100여 대, 잠수정 침투로 개별상륙이라도 600명이 해안선에 상륙하려면 그 대열만 해도 웬만한 해안선 전체를 장악해야 한다. 즉 대대급 상륙작전을 감행해야 한다는 거다.
상황이 이런데 이들의 침투를 우리 군대가, 그것도 전군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몰랐다? 경계에 실패했다? 그들의 상륙작전이 성공했다? 그것도 단 한 명도 발각되지 않고 모두 상륙에 성공했다?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1980년 당시 우리 해안선은 거의 상당수를 현역들이 지키고 현역 병력이 미치지 않는 해안선은 전투경찰과 지역 방위병들이 경계했다. 아무리 방위병이라도 600명이 상륙하는데 발견할 수 없다고? 부산 다대포로 상륙하려던 공비 일당은 당시 어선이 발견하여 신고하므로 소탕되었다. 우리 국민들 우습게 보지마라.
허기야 북한 잠수정이 침투, 1번 어뢰로 2500톤급 함정을 두동강 냈어도 이를 알지못한 한국군이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이해해야 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한미 합동으로 서해상 우리 해역에서 키 리졸브 훈련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북한군은 무동력 잠수정을 침투시켜 1번 어뢰를 쏴서 훈련 중인 우리 함정을 두동강 내고, 그 때문에 생때같은 우리 아들들 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 대단한 북한군의 능력이다. 그런데 이걸 믿지 않으면 종북이라고 몰아부친다.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일 때 아주 공식적으로 묻는 질문 중에 빠지지 않은 질문이었다. 내가 대통령 후보였다면 나는 이걸 질문하는 기자에게 당당하게 "국방부 발표를 믿겠다. 그런데 그 발표가 맞다면 훈련 중임에도 적 잠수정 침투도 알아채지 못한 경계실패를 왜 대통령은 문책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리 해군 46명을 희생시킨 경계실패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해군참모총장, 국방장관까지 져야한다" 고 당당하게 말했을 것이다.
즉 국방부 발표를 믿지 않으면 '종북', 국방부 발표에 의혹이 있다며 침몰의 진실찾기에 열심인 한 민간 조사위원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이런 경계실패가 확연한 사건에 어떤 지휘관 문책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 이 사건으로 우리 해군의 누구도, 심지어 육상경계를 맡았던 해병대까지 어떤 군인도 경계실패에 대한 문책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무려 46명이 희생되었음에도...
1974년 2월, 충무 앞바다에서 해군 훈련병 159명이 희생된 YTL 침몰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당시 해군은 신병훈련소 대대장(소령), 대대 훈련대장(대위), YTL 운항책임자인 통제부 항무과장(소령) 등 3명을 구속시켰다. 또 해군교육단장, 신병훈련소장, 815함장은 직위해제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후속조치로 해군참모총장과 차장을 문책 경질했다.
다시 말한다. 1980년 광주에 북한군 600명 침투설을 퍼뜨리는 자나, 이를 방송한 자나, 이 허황된 소리를 믿으며 광분하는 자나, 이 허황된 소리를 퍼뜨리는 자나, 이들을 방기하여 광주 민중들의 항쟁을 폄하하려는 자 모두가 바로 진정한 '종북주의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종북주의자'이기 때문에 북한군의 대단한(?)능력을 믿고, 우리 군은 전군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지키는 휴전선도 저들에게 뚫리는 허술한 군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 군대는 믿지 않고 북한 군의 능력만 신봉하는 사람들이 종북이 아니면 누가 종북이겠는가?
그래서 어찌하면 군대를 안 갈까 하고 별 꼼수를 다 부리는 사람들도 그쪽에 훨씬 많다. 어쩌면 이들이 우리 군대는 믿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나는 앞으로 북한군 600명 광주침투를 논하는 자들을 '종북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했다.